이토 준지, 공포 콜렉션

 

ito-junji

제가 제일 좋아하는 호러 스타일입니다. 원래도 공포물을 제일 좋아하긴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공포물의 코드는 명확해요. 잔인하기만 한 건 그냥 원초적으로 징그럽기만 해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공포물 매니아인 저는, 공포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무섭냐?, 무섭지 않느냐?’에서 그치는 게 불만이예요. 공포물은 그냥 자이로드롭 같은 게 아니예요. 더 나아갈 수 있는 미학이 있죠.

제 취향에 딱 맞는 공포물을 접했을 때, 드는 희열을 과연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공포물이 주는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알기 시작하면, 슬픈 영화같은 것은 성에 안 차요. 제가 가진 공포물에 대한 미학이라면, 공포는 무작정 징그럽고, 잔인하다고 해서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라는 거예요. 진정한 공포는 다음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려면 보는 사람의 현실과 연결되는 링크가 있어야 하죠.

전 극도로 오싹하고, 숨이 멎을 것같은 공포를 느낀 후에는 엄청난 희열과 기쁨이 느껴지곤 하는데요. 쓰고나니 굉장히 변태 같네요. 그러나 절 기쁘게 하는 것들은 별로 없어요. 특히 잔인하기만 한 서양 호러는 제 눈엔 불쾌한 개그예요. 악마만 나오면 이상하게 겁 먹는 것도 공감 안 되고요.

특히, ‘놀랬지!’ 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깜짝깜짝 놀래키기만 하는 것도 짜증이 나죠.

이토준지의 공포 콜렉션은 딱히 무서워 죽겠네, 이런 스타일이라고 보긴 힘들고요. 인간이 어떻게 기발하고 엉뚱하게 으스스한 상상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서 좋아요. 특히 ‘벽’. 벽이라는 흔히 보는 아이템으로 온갖 상상을 하죠. 이렇게 누구나 흔히 마주치는 소재로 스토리를 개발하면 당연히 보는 사람과 인터랙션이 생겨요. 저는 그런 상상력을 자극하는 점이 아주아주 좋습니다.

특히 그것이 호러적인 어떠한 상상력일 경우에는 제가 받는 카타르시스가 극대화 돼요. 생각지도 못하게 엄청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나, 아니면 낯선 곳에 여행가서 무작정 걸어다닐 때와 비슷한 기분이죠. 일상 속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것, 뭔가 예기치 못한 일을 겪을 때 느끼는 흥분인 것 같습니다.

이래서 제가 공포물을 끊을 수 없나 봅니다. 그리고 이토준지는 가장 제 취향에 적합합니다. 다시 요약하자면, 불쾌하게 피범벅으로 만들어서 본능적인 죽음의 공포나 유발해볼까 하는 그런 원초적인 호러물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심리적인 공포를 보여주는 것이 좋았어요.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는 느낌의 공포, -폐소 공포, -가장 친한 친구를 실은 질투해서 없어지길 바라는 무의식을 마주쳤을 때의 스스로에 대한 공포, -깊고 어두운 곳에 실은 아무도 몰랐던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의 공포, -내면의 부족한 자신감을 들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 -누군가를 끊임없이 따라하면서 내 존재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두려움, -끝없이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추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 이런 식의 심리적인 공포를 일상적인 소재로, 공감가는 이야기로 잘 이끌어내어져 있습니다.

p.s>토미에 시리즈는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자들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데에 대한 공포를 잘 살렸다고 봐요. 아름다운 여자에 대한 남자들의 본능적인 공포는 각 나라의 신화에서부터 알 수 있죠. 판도라나 하와의 이야기, 마녀사냥, 로렐라이의 전설, 뭐 그런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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