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미학

jungmin

이 책에는 글쓰기에 관한 연암의 사상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그의 테마를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변화’이다. 옛 글의 껍데기만 받아 들이지 말라, 형식은 지금의 것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본받을 것은 그 정신이다. 옛 것을 지금에 맞게 변화시켜라. 하지만 난, 이런 연암의 사상을, 글 짓는 자로서 만의 당연한 성찰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분명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로써는, 저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타성에 젖은 뒤통수를 죽비로 내리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겠지만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이 당시의 글쓰기란 모든 지적, 창조적 활동을 뜻했고 나아가 정치적 행위까지 의미했다. 지금처럼 글쓰기란 것 자체가 세분화되었던 시기가 아니었다. 이러한 때에 글쓰기란 행위 자체를 회의한다 함은 -그가 단순히 요즘 말하는 소설가나 평론가가 아님에- 단순히 글 짓는 법에 대한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난 이 책을 독파하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장에 빈 것–연암의 표현대로라면 속 빈 강정인-이 없고 밀도 있게 짜여 있었기에, 한 문장도 허술히 넘어가지 못하고 매 순간 새로이 집중해서 읽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난 타성에 젖을 만큼의 글쓰기도 안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글 짓는 법보다는 그 글쓰기에 대한 논의 아래, 연암의 사상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어떤 맥락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강렬하게 느낀 감정은 통쾌함이었다. 그것은 꽉 막힌 시대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좁은 해동국가의 지식인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사고의 장대한 스케일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그리고 연암은 이때 이미 근대 서양식 사고의 한계를 초월해 있었고, 그래서 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계속 감탄해야 했다.

문제에 대한 같은 착상에서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실하다. 연암은 온갖 사물들 속에서 하늘을 주재하는 존재가 섭리하는 모종의 이치를 찾지 말라 하였다. 그 하늘조차 이름은 여러가지이며, 그 하늘의 주재자 또한 제나 신으로 일컫지 않은가. 주역에서도 하늘이 만든 것은 초매草昧 즉 혼돈일 뿐이라고 했다. 하늘은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사는 달리 말한다. ‘자연 현상에서 하나의 법칙을 이끌어 내자면…<중략>… 갖가지 일반적 법칙을 서로 연계시켜 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중략>…여러 법칙을 두루 싸잡는 하나의 실마리가 잡혀 나온다’

즉, 이 수도사는 하늘의 이치는, 모든 사건과 사물의 궁극에는 하나로 통하는 고정불변의 진리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스스로 존재하는   이 고정불변의 진리라는 것에, 인격을 부여한 것이 바로 기독교적 유일무이한 신이다. 이런 사고는 서양에선 현대에 들어서야 많은 회의를 거쳐 스스로 붕괴하지만 동양에서는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세상을 관통하는 궁극의 진리, 이런 있지도 않은 관념이 만들어낸 허상을 찾으며 헛수고 하지 않았다. 하늘의 맷돌은 오로지 ‘돌아가는 것’에 그 힘이 집중되어 있고 돌리는 작용밖에 하지 않지만, 그 돌리는 작용에 의해서 만물은 밀가루처럼 굵고 곱게 땅으로 흩뿌려 만들어졌다. 맷돌은 밀가루 덩이를 어떤 모양으로 하겠다는, 아니, 밀가루를 갈겠다는 의지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진 것은 오로지 돌리는 힘이었을 뿐이다. 서양의 현대 철학자 니체의 ‘권력의지’와 아주 흡사한 발상이다. 고정불변의 진리란 없으며, 있는 것은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는 방향을 가진 ‘힘’일 뿐이라는.

말했듯이 이것은 근대 철학의 한계를 깨뜨리기 위한 알 껍질 깨기였으나, 연암은 알 껍질은 처음부터 없었던, 진정으로 크고 자유로운 사상가였다. 저자 정민 선생님은 반복해서 풀이한다. ‘하늘의 섭리는 없다. 고정불변의 이치는 존재하지 않는다…<중략>… 하늘의 이치란 것도 하나의 법칙이란 것도 인간이 지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

이 말은 나아가 언어 철학적인 영역까지 확대된다. 단순히 글쓰기가 아니라 언어에 대한 궁극적인 고찰이다. 하나의 기호는 하나의 진실만을 담고 있지 않다. 어떤 의미를 표현하는 기호는 그 의미와 필연적인 관계에 놓인 죽은 껍데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호와 기호 사이에도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 그리고 사람은 의미보다는 그것을 표현한 기호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기호는 살아있다. ‘코끼리는 살아있다’

연암은 획일화된 가치 척도로 세계를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화석화된 코끼리의 이미지(기호)는 더 이상 이미지가 아니다. 인간의 사변적 지식이 얼마나 하찮고 허망한가, 하지만 이미지는 살아있다.
이것이 연암이 던지는 화두라고, 21세기의 정민 선생님은 말했고, 21세기의 나는 거기에 감동한다.

이런 연암의 사고는 일관성을 지녀서, ‘검은 것은 어둡다 하는 자는 검은 것을 모르는 것이다. 물은 검기 때문에 능히 비출 수가 있고, 칠은 검은 까닭에 능히 거울이 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빛깔 있는 것 치고 빛이 있지 않는 것이 없고, 형상 있는 것에 태가 없는 것은 없다’고 까지 말하기에 이르른다.

얼마 전에, 고전 동양 사상은 서양의 물리적 지식을 모두 구사하고 있었다는, 약간 과장된 주장이 있었는데 이런 연암의 말도 그 연구자의 표적이 될 만하다. ‘빛깔 있는 것 치고 빛이 있지 않는 것이 없다’란 말이 그러하다. 놀라울 정도로 가시광선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빛에 대한 과학적 지식도 없었으면서 어떻게 저런 날카로운 고찰이 가능했을까?

과학이란 학문 자체가 먼저 관념으로 시작하고 실험으로 입증하는 순서를 지녔고, 그 과학적 관념이란 것과 철학의 영역이 같거나 명확하지 않는 걸 보면, 그 관념이 실험에 우선하여 몇 백년 먼저 정확한 예측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실 이상하지 않다.

연암이 경境에 대해 이르기를, 먼데 있는 물에는 물결이 없고, 먼데 있는 산에는 나무가 없으며, 먼데 있는 사람은 눈이 없다고 했다. 이것은 문장의 정경을 논한 말이지만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릴 때, 과학적인 공기 원근법에 관한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세계에 대한 바른 통찰이라고나 할까, 사실 먼저 철학자들이 관념만으로 이해한 세계가 훗날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사건이 여럿 나온다.

‘형이 있는 곳에 태가 있다’ 이 말은 먼저 머리 속으로 시비를 가린 ‘태’를 정해놓고 형상은 거기에 맞도록 요구하는 속인들을 경계하는 말이다. 어떤 형상을 하고 있어도 옳고 그름은 없다. 진실만 담겨있으면 바로 태가 있는 것이다. 속인들은 아我로써 사물을 재고 자기 요구에 미치지 못하면 성내고 노하지만, 통달한 사람은 사물은 그 사물로써 판단할 뿐이다.

난 마음이 쓰렸다. 분별이란 것이 생기면 생길수록 난 싫어하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난 HOT도 싫고, 자우림도 싫고, 내게 관심을 가져서 간섭하는 사람들도 싫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싫어했고, 또한 내가 이해 못하는 자를 싫어했는데 이렇게 분별지가 뚜렷해져 싫은 것이 많아질수록 내가 속인이란 증거밖에 더 되겠느냔 말이다.

장자는 개똥에도 도가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 난 분별하고 시비하고 성내고 싫어하고 있을까. 내가 아집이 강해 모든 만물을 그 자체로써 보지 못하고 내 아我로써만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은 것은 정말 나쁜 것인가? 독단, 독선은 지독한 괴로움과 외로움을 안겨준다. 나 외엔 모두를 증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른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개똥에도 도가 있듯이, 도 없는 것은 없었다. 하나의 진리가 없듯이, 어디에도 진리가 있었고 모두 신이고 부처였지 않은가.

연암은 분별지는 인간에게만 있다고 하였다. 상자를 연 판도라의 이야기도, 선악과를 따먹어 자의식을 지니게 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도 분별지가 인간에게만 있으며, 그것은 인간다운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의 원인이기도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사소한 인간적 분별지를 넘어서, 옳고 그름을 초월한 그 가운데, 진정으로 바른 견해가 있다고 하였다.

속인은 형과 색만 가지고 판단하지만 달사는 그 속의 광과 태를 읽을 수 있다. 정민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꼴 속에는 다양한 태가 있다. 난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다. 아버지이기도 하고 자식이기도 하며, 선생이기도 하고, 제자이기도 하다. 진정 나는 누구인가? 이 판이한 모든 것이 나인가? 답은 간단하다. 그 다양한 태를 인정하는 것뿐이다. 속인은 그 속에서 진정한 단 하나의 나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잘라 말하지만-옛날의 나를 보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이 다 나이다.

불교에서는 좀더 크게 생각해서 그 모든 태가 나라는 증거가 없으므로 네가 스스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거짓이라고 했다. 일초전의 나라고 생각했던 자가 진정 나인가? 나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억’밖에 없다. 모두 다 나이지만 그게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 그 존재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했다. 그러면 진정한 내 존재를 찾겠다는 허무하고도 괴로운 생각은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연암은 음악과 악기가 변한 것을 예로 들어, 사대부가 옛 소리를 회복하고자 갑자기 쇠북과 피리를 부수고 고치면, 악사와 악기가 모두 없어지기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연암의 사상에서 가장 큰 맥락이 여기에 있다.
‘변하지 않는 건 도태된다’
하나로 통한 진리가 없다는 것도, 모든 형에는 태가 깃들어 있다는 것도, 이 변화에 대한 연암의 생각에서 뻗어져 나온 것이다.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도태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스스로를 거듭나야 한다. 그래서 그 형은 항상 변하지만 그때마다 태는 깃들며, 진리가 된다. 그러나 이제 변화를 긍정하는 달사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정민 선생님은 한탄한다. ‘차라리 입을 닫고 침묵하리라. 그러면 속인들의 노여움을 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말하고 나니 답답하구나’ 왜 답답한 것인가. 알아듣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연암이 말한 그를 알아주는 벗, 옛날에서 찾을 것인가, 후세를 기다리는가, 그 답답한 심경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역동적인 연암의 변화에 대한 철학은 글쓰기에도 반영된다. ‘글을 하는 자는 참됨을 추구할 뿐이다. 그 참을 위해서라면 그것이 추하든 악하든 나는 가리지 않겠다’ 언뜻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이 생각난다.
초록 물고기나 박하사탕, 그리고 오아시스에 이른 그 리얼리즘의 영화들은, 너무 리얼하기에 오히려 불편한 느낌마저 준다. 조금도 미화되지 않은 그 장면들은, 영화라는 것에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약간의 외면이나 자비도 허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은 것을 잔인하게 직시한, 그 불편함이 진한 감동으로 승화되곤 했다.

「구슬과 옥이라 해도 ‘참’이 아니라면 나는 버릴 것이고, 자갈돌 기왓장이라 해도 그것이 ‘참’일진대 나는 그것을 추구하리라…<중략>…우리의 ‘진정지견’은 내 이명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내 코골기를 직시하는 데서 마련될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진정으로 있는 그대로의 참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때로는 마음이 만물을 왜곡하다 못해 병통을 내는 수가 있다. 연암이 겪은 강물 소리가 그러했다. 시냇물 소리를 다 똑같지 듣지 못한 것은,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바를 펼쳐놓고서 귀가 소리를 만들기 때문이었다. 또한 보이는 것, 눈에 의지하고 기대려고 하면, 어두운 밤에선 황하 강 소리가 위태롭고 두렵게 들려 견딜 수가 없었다.

연암은 말한다. 내가 이제야 도를 알았다. 마음이 텅 비어 고요한 사람은 귀와 눈이 탈이 되지 않고, 눈과 귀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더더욱 병통이 되는 것임을. 이 연암의 깨달음은 데카르트의 초기 의문과 같다. 내 눈과 귀를 믿을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을 의심한다. 진정 눈과 귀에 현혹되지 않은 불변의 명제가 있는가? 그래서 나온 것이 ‘나는 생각한다’였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그 명제를 통해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연암은 마음을 텅 비우고 고요하게 한다는, 문제 초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오감에 의지하면 마음에 공연한 작용을 일으켜 허상을 만들 뿐이다. 오감에 의지하지 않고 진정 사물의 참됨을 밝게 직시하려면 마음으로 보라고 하였다. 그것을 혜안, 여래의 눈이라고도 하는데, 연암은 열하일기에서도 이렇게 기록했다. ‘여래의 밝은 눈을 가지고 시방세계를 두루 살펴본다면 평등치 않음이 없으리라. 온갖 일이 평등하고 보면 절로 질투하고 선망하는 마음이 없게 될 것이다’ 그때 마침 장님을 만나는데, 장님은 눈의 작용에 쓸데없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연암은 그의 (마음의) 눈이야 말로 평등하겠다고 생각한다. 오감이 개입하지 않은 마음의 판단은 진실하다.

쇼펜하우어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알면 알수록, 보고 듣는 것이 많을수록 인간의 고통은 커진다. 그러므로 소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평온한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분별지를 경계한 연암의 사고와 흡사한 구석을 보인다. 이렇게 보면 사상가들은 오감을 부조리하게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진실되게 그 자체를 직시할 수 있는 혜안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정민 선생님도 그렇게 말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현혹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본래 자리, 세계가 교통할 수 있는 촉수가 싱싱히 살아있던 그 지점으로 돌아가라고. 부릅뜨고 볼수록 더 현혹된다. 도로 눈을 감고, 마음으로 보아라. 그리고 불교에서도 똑 같은 말을 했다.

학문에 관해서 연암은 서책 속에 담긴 정보를 삶의 의미와 연관 짓지 못한다면 독서가 소용없다 했다. 의식이 없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 내게 감명을 주었던 말인, ‘삶을 구원해주지 못하는 학문은 학문이 아니다.’와 맥락을 같이 한다.

난 이 연암의 책을 읽고 있는 것이 하나의 구도라고까지 생각했다. 책 읽는 것이 이렇게 깊은 깨달음과 반성과, 그리고 거기에 따른 지극한 희열을 줄 수 있다면, 바로 구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연암은 천지 만물의 비의를 가늠할 줄 알았던 포희씨의 정신과, 그것을 기호 속에 재현해 낼 줄 알았던 창힐씨의 마음을 잃었다고 한탄했다.

우리는 그 기호를 흉내내고만 있을 뿐이지, 그 사물에 애정을 지닌 창의적인 정신과 마음은 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역에서도, ‘궁하면 변화해야 하고, 변화하면 서로 통하게 된다. 통하게 되어야만 비로소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낡은 기호, 죽은 이미지에 집착한다. 시인은 죽은 지 오래인 귀신의 시를 비슷하게 흉내내니, 그 입 냄새가 심하다. 하지만 진정한 고전은 옛날에 있지 않고 지금에 있다. 안목이 밝지 않고 기호하는 것에 치우침이 많아 사사史似를 기뻐하며 진사眞史를 미워하는데, 그래선 안 된다. 심사와 형사편도, 형과 태와 같은 내용이다. 밝은 눈으로 참됨을 꿰뚫어 보되, 겉모습만 옛 것을 따라 꾸며선 안되며, 본받을 것은 그 참된 정신이라는 것이다. 심사는 끝내 진에 도착하지만, 형사는 결국 사에 그치고 만다. 겉모습을 꾸미는 것은 비슷할 뿐 참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것은 결국 가짜다.

변하는 것에 대한 연암의 추적은 계속된다. ‘아침에 술 마시던 자가 저녁엔 그 장막을 떠나간다. 천추만세는 지금으로부터가 옛날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것은 옛날과 대비하여 이르는 것이요……’ 연암은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와 미래는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며, 항상 지금이라는 순간의 집합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세월은 쉼 없이 흘러가 버리고, 노래도 변하고 문장도 변하고, 사람들의 기호나 취향도 자꾸 바뀌게 마련이다. 우리보다 앞선, 지금과 대비하기 위해 관념상 설정한 ‘옛날’을, 박제화된 ‘그 때’를 맹목적으로 추수할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충실하는 것이 백번 옳지 않겠는가?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문학에 관한 연암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문학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슨 거창한 소명의식이나 교훈주의가 아니라, ‘천진天眞’과 ‘진정眞情’의 토로일 뿐임을. 이런 연암의 문학론을 정민 선생님은 한 글자로 표현한다. 변變, 바로 이것이다. 옛 것이 좋긴 좋지만 그대로는 안 된다. 변화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 변이라는 글자는 완전히 생판 낯선 것을 추구하자는 것이 아니라, 옛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연암을 고문학자라고 해도 또한 맞는 말인 것이다.

연암의 이런 기본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문학론이 전개가 되어, 나중엔 수사론에 이르게 된다. 연암이 말한 수사는 해묵은 장을 새 맛 나게 하는 새 그릇인 셈이라고 했다. 일상적인 이야기인데도 듣는 이가 새롭게 집중하는, 다른 경계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전개되어가는 글쓰기에 관한 연암의 변설 중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병법에 비유한 내용이었다. 항상 글쓰기는 전쟁과 같다고 생각한 나로썬 이런 박진감 있는 연암의 비유에 구구절절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 단 한번 쓰고는 다시 손대지 못했던 논술이란 녀석도 생각나고, 그 때 나왔던 제목을 보면서 어떻게 공격해야 할까, 어떻게 이 몇 백자 원고지에 정확히 진을 짜고 열을 구성해야 하나, 이건 완전히 진흙탕 싸움이로군, 쓰다가 막혀서 좌절할 때마다 ‘이제 난 틀렸어, 안되오 김일병!’ 등등을 생각했기에 연암의 비유가 낯설긴커녕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동지를 만난 듯이 반가웠다.

그 중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함축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다’란 부분이었는데 연암의 절제된 문장을 생각하면서 감동을 받았다. 함축을 귀하게 여긴다 함은, 구차한 설명이 없고 절제된 말로 핵심만을 통한다는 뜻이니, 전쟁터에서 일단 성을 함락하고 나면 낱낱이 확인 사살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그의 이런 글은 누님의 묘지명에서 빛을 발한다.

묘지명을 읽었을 때, 그 절제된 문장으로 표현한 그의 슬픔에 눈물이 날 뻔 했다. 구차하게 자신의 슬픔을 나열하지도 않고, 그저 함축된 어조로 글을 썼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슬픈 글이 있었던가 생각했다. 묘지명에는 원래 축만 쓰는 것이 상식이었는데, 연암은 구성과 내용면에서 엄청난 파격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시대를 앞질러 간 연암의 재능과 성격으로 봐서 그가 지적으로, 사상적으로 그를 완전히 알아주는 벗 없이 외로웠을 거란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책 뒷부분은 연암의 문장에 대한 것이라기보단 그가 가진 지적인 번뇌와 벗에 대한 갈구에 관한 것이었다. 연암은 생각과 자기 의식이 곧 번뇌임을 알고 있었다. 취하지 않고서도 생각이 없게 되면 거의 큰 미치광이의 경지에 가깝게 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심각한 정신분열을 보인 송욱과 자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마음으로 마음을 본다니, 마음을 증명하는 그 마음은 또 어떤 마음이란 말인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일진대 어찌 아我로써 아我를 증명할 수 있으랴! –주어로써 자신을 증명한 데카르트와는 그 스케일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아我는 본시 허무이고 적멸인 것을’.

어느 것이 실상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가? 《주공탑명》에서처럼 나는 거품이고 거품은 곧 나다. 그럴진대 인생이란 하나의 포말일 뿐이 아닌가. 이렇듯 연암은 자기에 대한 생각은 번잡하되 자기를 잊으려 애를 썼다. 그래서 돌에 도장을 새기는 자의 행위를 미워했다. 정말 없어지지 않을 이름은 칼로는 새길 수 없다. 이름에 집착하지 말라. 잊혀지는 것은 조금도 무섭지가 않다. 정작 내 자신 앞에 내가 떳떳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이렇게 연암은 점점 자기 속으로 파고 들었다.

진정으로 자신을 잊으면 남을 증오하는 마음도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연암은 기호가 있었고 꺼리는 사람도 있었기에 스스로를 괴로워했다. 연암이 해탈한 도인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연암은 이렇게 자신에 대한 생각이 번잡해서 관념과 육체가 분리되고 이상과 현실이 조화가 안될 바에야, 차라리 미쳐서 생각이 없게 되길 한편으론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암은 이 상태에서 끊임없이 구원의 글을 써 자신의 발광할 것만 같은 정신을 놓지 않는다.

「보내는 것을 순리대로 하면, 넌 마음에 머무는 것도 없게 되고, 기운이 막히는 것도 없게 되겠지. 명에 따라 순응하여 명으로써 아我를 보고, 이理로써 떠나 보내 이理로써 물物을 보면, 흐르는 물이 손가락에 있고 흰구름이 피어날 것이니라」

연암의 그런 마음 상태를 달래 줄 방법은 연암도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말 이상의 것을 알아주고 자신과 완전히 소통할 수 있는, 관포지교와도 같은 그런 벗이었다. 그러나 과거에서 찾는 것도, 미래에 알아주는 이가 있겠지, 하는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암은 현재 괴롭기 때문이다. 겨우 마음에 꼭 맞는 이를 찾았나 싶었지만 그는 멀리 중국에 있어 만날 수 없다.

천재들에게 보편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맞지 않은 시대와 장소에서 태어난 것이 불운이었다.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식상한 말이지만 연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항상 괴로움을 간직하고 있던 연암이었기에, 요동벌에서 ‘훌륭한 울음터’ 라고 한 말이 그냥 멋진 비유 정도로 흘려지지가 않았다. 해동의 작은 국가에서 일생을 외롭고 알아주는 벗 없이 번뇌하던 지식인으로써는 요동벌처럼 탁 트인 곳을 보았을 때, 감동을 넘어서 북받쳐 오르는 어떤 것이 있지 않았을까.

21세기, 그를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당시의 연암은 가까운 벗 하나가 그리웠을 것이다. 그의 고통을 생각하면 천재 따위는 전혀 부럽지 않으며, 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연암에겐 무척 죄스럽지만, 다만 천재가 고통 속에서 남긴 시대를 초월하는 문장만 읽으면서 지금처럼 감동하고 싶을 뿐이다.

200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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