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 피츠제럴드 F.S. Fitzgerald –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코스모폴리탄 같은 데에서 느껴지곤 하던 미국스러운 속물 냄새,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을 때 그런 냄새가 잔뜩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이 냄새를 숭상하면서도 경멸하고 있었다. 이 냄새는 이 소설이 처음부터 의도한 바였다.

이 소설에서 가장 편안하게 호감을 보낼 수 있는 인물인, 화자 –닉 캐러웨이-는 이해하기 쉬운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가 소설을 읽는 사람이 기대하는 만큼의, 다른 캐릭터보다 좀 더 의식이 있고 좀 더 지적이라는 것에서부터 그렇다. 그래서 그는 속물들이 쌓아놓은 허상에서 살고 얼마간은 누리기도 하지만 그것을 경멸할 수 있었다. 또한 닉의 태도는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어떤 일 앞에서 모든 판단을 유보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가 이렇게 판단을 유보하는 자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좀더 타인을 지켜보았고, 보이는 대로 보는 시간이 길었다. 보이는 대로 본다. 자기의 판단은 나중이다. 이것은 같은 관찰이라고 해도 뜯어보는 즉시 족족 판단을 개입시키는 것과는 다르다. 닉은 그렇게 보다 진실되게 개츠비를 판단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의 내 생활에서 이러한 것들을 되살려 전문가 중에서도 모든 학식을 고루 갖춘 이른바 ‘박식하고 원만한 사람’이 되어 볼 작정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결국 인생이란 하나의 창으로만 내다보는 사람이 훨씬 성공하기 쉬운 법이니까」

닉은 하나의 창, 자기만의 시각과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지 않고 여러 개의 창을 가진 박식하고 원만한 관찰자의 입장을 택했다. 심지어 개츠비는 닉이 ‘확고부동하게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그를 끝까지 지켜봤고, 결국은 그가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소설에서 아메리카 드림 그 자체인 톰은, 그의 역할에 걸맞게 어린애 같은 정신과 무자비한 육체를 지니고 있는 자였다. 자신의 정의 그 이상의 것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폭력적인 독단과 독선이 그 근육으로 화한 것 같았다. 가난하고 무지한 자에게 가차없는 동부 상류사회의 결정체는 그래도 닉과는 친하고 싶어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것은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를 원하는 진실된 마음에서가 아니라 단지 과시용이었던 것 같다. 돈과 권력을 지닌 그는, ‘정치적’이고 신중하며 매우 지적인 자신의 왕국의 2인자, 즉 헤드로서 닉을 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돈 많고 집안 좋은 귀여운 바보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여 그 방식대로 사랑한다(고 믿는다). 톰은 사랑을 위해 무언가-기득권 같은 것-를 버릴만한 인물이 못되었기에, 그가 사랑하던 ‘머틀’이란 여자와의 관계도 그렇게 만족했으며, 아내 데이지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그가 데이지를 사랑했는지, 아니면 데이지와의 결혼을 사랑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쪽으로 결론짓는 것은 당연하다.

데이지도 여지없이 부정적인 이미지이지만 그래도 피츠제럴드는 애정을 가지고 묘사하고 있다. 데이지는 진지하게 자신의 딸에 대하여 ‘귀여운 바보’가 되길 원하며, 그것이 여자로선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데, 가장 적절하고 예리한 통찰임에 동시에–데이지의 캐릭터로 봤을 때, 그녀가 스스로 자각했으리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씁쓸한 체념으로 보인다.

당시 상류 계층의 여성은 허영 그 자체가 교양이었고 미덕이었다. 남자들과 같은 지성을 갖는 건 어폐가 있는 것 같지만, 교양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과 거리를 두고 관찰할 줄 알며, 그것이 속물적이라 판단한 닉 조차도 턱에 무언가를 올려놓은 것같이 꼿꼿한 여성을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지 않은가.

「어떤 완전한 자기 충족의 과시이든지 간에, 그런 태도는 대체로 내 입으로부터 멍청한 찬사를 이끌어낸다」

데이지는 완벽하게 환상만으로 이루어진 여자였다. 아름답고, 부자였고, 용기가 없어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보호받지 않으면 안될 만큼 적당히 연약하며 적당히 멍청했다. 이런 그녀였기에 개츠비는 더욱 사랑한 것이다. 데이지는 목소리에서 기분 좋은 ‘돈 소리’ 같은 울림이 있는, 마치 상류계 여자들의 교과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소유하는 것이야말로 어엿한 상류계 일원임을 상징하는 것과도 같았다.

개츠비는 환상만을 좇던 집요한 남자였다. 그가 처음부터 톰처럼 돈이 많던가, 닉처럼 많은 책을 읽고 지성을 쌓았던가 했다면 그 같은 캐릭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고, 그래서 그는 무조건 얻고, 무조건 불리고, 무조건 올라가는 신분 상승적 욕망으로 꽉 차있었다.
데이지는 그 욕망에 어울리는 여자였고, 넘볼 수 없던 위치에 있었기에 더더욱 개츠비의 집착은 평범한 사랑을 뛰어 넘게 된다. 처음의 개츠비의 의도나 그가 사랑하는 대상에 있어서는 확실히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데가 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그녀가 나를 버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데이지를 되찾기 위한 집요한 노력은 처절하고 눈물겹다. 온갖 비열한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재력을 충족시키고, 데이지의 집을 건너다 보기 위해 저택을 사들이고, 과거를 속이고, 그리고 혹시 데이지가 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매주 성대한 파티를 여는 개츠비는, 데이지가 있는 방향인 녹색 불꽃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는 창조적인 정열을 기울여 자기 환상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환상을 키워 나가며 자기 멋대로 찬란한 깃털로 장식해버렸던 것이다. 아무리 뜨거운 정열이나 순수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한 남자가 자기 가슴 속에서 키워온 환상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그는 단지, 그가 품었던 데이지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진정 쓸모 없고 잘못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인생의 목표가 흔들림 없이 한가지로 집중되어 있는 그 상태의 개츠비야말로 가장 추진력 있고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으니까 말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잃게 되었던 가장 큰 결핍 –재력-을 데이지에게 던지듯 보여주며 자신에 대한 재평가를 간절히 바란다. 그가 던져 쌓아 올린 아름다운 셔츠에 얼굴을 묻으며, 속물이라 가치 있는 데이지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데이지는 곧바로 개츠비를 다시 사랑한다.

모두가 사태를 알게 되고 날씨조차 미친 듯이 뜨거웠던 날, 개츠비와 톰, 데이지는 막판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얄궂게도 데이지는 톰의 내연의 여자인 머틀을 치어 죽이고 만다. 톰의 자기 중심적인 사랑을 위해 선택되었던 머틀은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톰에게 휘말려 비참하게 죽어버리고, 이런 비극적인 상황과 동시에 개츠비의 사랑과 인생도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그는 단호하게 데이지 대신 죄를 뒤집어 쓰고, 데이지를 걱정하며 집 주변을 지킨다.

알 수 없지만 그는 희열에 넘쳐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지에겐 자신은 항상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그녀를 구해주고 지켜줄 수 있게 된 위치가 된 것에 최고의 만족감을 얻고, 그럼으로서 그의 사랑은 완성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건 내 안에 자리한 상대의 허상을 사랑한다고 믿으며 자기 만족을 하는 것뿐이라 해도, 그래서 희생조차 자신의 만족에 불과할 뿐이라 해도, 이성을 마비할 만큼 강력한 그 순간만큼은 진실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너무나 새로운 전개이고 다시 생각하면 너무나 필연적으로, 재의 계곡에 사는 가난하고 빼앗기기만 하는 약자-머틀의 남편, 개츠비가 머틀을 죽였다고 믿는- 윌슨에 의해 개츠비는 살해된다. 운명이란 것에 인과가 있다면 개츠비의 죽음은 소설의 구도상 너무도 적절했다. 그리고 그가 사랑을 완성했던 순간, 더위가 한 풀 꺾이려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죽을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그의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톰은 끝까지 어린아이인 채로, 버릴 수 있기에 얻는 것이 있다는 것도, 인생의 참 맛도, 영원히 모르는 삶을 살 것이고 데이지는 자신을 대신해 죽은 개츠비를 영원히 마음에 새긴 채 살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 사람들 전부를 합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오!”

마지막까지 판단을 유보했던 닉은 드디어 이렇게 외친다.

「나는 그때 그렇게 말했던 것을 지금까지도 기분 좋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보낸 유일한 찬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닉이 이렇게 개츠비 곁에 끝까지 남아 지켜보기 위해선, 그가 좋아했던 여성 –매력적으로 허영적인- 조던을 포기해야 했다. 닉은 분명 어느 한 순간 조던을 진절머리 나도록 실컷 보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닉은 분명 상류 사회의 허상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조던은 끝까지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거만하게 닉을 떠나는, 그래서 딱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닉은 이젠 조던 같은 여자를 다시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 처음에 쓰여있던 대로 ‘특권을 지닌 눈초리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소란한 유람, 혹은 답사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닉과 단 한명의,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 왔을 뿐이었다. 개츠비는 자신이 진정 속해야 할 곳에 속하지 않고 허상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었다. 수백 명이 개츠비의 집을 드나들었지만, 개츠비가 그들을 데이지를 끌어들이기 위한 껍데기 정도로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한자리에 있으면서도 개츠비가 어디 있는지, 누군지도 몰랐다.

허상과 허상끼리 부딪쳐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공허한 인생이었던가, 다시 한번 개츠비의 인생에 대해 안타까운 의문을 품게 되지만 올빼미 안경을 걸친 남자는 속 시원하게 한마디 날린다.

“저런! 그럴 수가 있나! 몇백 명이나 그 집에 드나들었는데! …후레자식들 같으니라고.”

뭐, 두 사람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개츠비가 데이지의 부두 끝에서 최초로 녹색 불빛을 찾아냈을 때의 그의 경이에 대해 생각했다…<중략>…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는 나머지 그것을 붙잡는 데 실패하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는 그 꿈이 이미 그의 뒤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분명히 그랬다. 개츠비는 눈 앞의 꿈을 향해 나아갔고, 자신이 실패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손을 뻗는 순간 꿈은 이미 그의 뒤로 가버렸다. 하지만 인생은 성공하는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개츠비의 인생은 가치 있었다. 그는 꿈을 향해 ‘손을 뻗는’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을 지나쳐 가 버린 것에 대해 개츠비는 ‘알지 못한 채로 죽었기 때문에’ 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개츠비는 그 초록 불빛을, 해마다 우리 앞에서 물러가고 있는, 진탕 마시고 떠드는 주신제 같은 미래를 믿고 있었다. 그러고 나면 미래는 우리를 피해갔는데,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안 된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뛸 것이고, 우리의 팔을 더 멀리 뻗칠 것이다」

난 궁금한 것이 있다. 개츠비가 쫓은 꿈이, 닉을 비롯해서 누구라도 납득할 만큼 고귀하게 느껴질만한 사랑이었다면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어울렸을까? 소박하고 털털하지만 진심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귀족 여성에 대한 사랑이라거나, 가난하지만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정숙한 여성에 대한 사랑이라거나, 여튼 ‘난 사랑은 속물이 아니라고 믿어.’라는 사람들을 납득시킬만한 그런 꿈을 꿨다면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난 ‘지루한 개츠비’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츠비는 남이 쉽게 겉만 훑어보고선 경멸하기 딱 좋은 꿈에 인생을 집중하고, 목숨을 바치고, 누구보다도 행복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에이-설마 그런 속물과의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 자본주의 어쩌구, 라고 말하며  ‘위대한’을 반어법이라고 생각하는  헛똑똑이들보다도 분명히 위대했다고 믿는다.

200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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