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Jane Austen –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나에겐 매우 어려운 책이었다.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할지 전혀 모르겠기에 그렇다. 솔직하게 느낀 바를 말하자면 재치 있는 대화랍시고 상대의 말을 소모적으로 받아치는 모습들은 피곤하게 보일 뿐이었으며, 도저히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상황과 캐릭터들 때문에 인과를 이해하는데 고생스러울 뿐이었다.

크게 막히는 곳 없이 끝까지 술술 읽긴 했지만 마지막엔 더없이 훌륭한 조건의 남자를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 같은 엔딩은 오히려 더 불쾌할 뿐이었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을 접고 멋진 남자를 잡으란 말인가. 하지만 그 멋진 남자도 여주인공에게 끌렸던 이유를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자기처럼 멋진 남자에게 아양 떨지 않는 오만한 여주인공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라는 뭐 그런 것 아닌가.

일단 당시의 영국 사교계 문화에 거부감이 들었다. 작은 아씨들 같은 소설도 생각나지만, 로맨틱하게만 감상하기엔 ‘내가 투표권을 가진 남자였다면 좋을 텐데’라고 말하는 조의 모습에서 갑갑함을 느꼈듯이, 이 당시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 소설 전반에 흐르는 중상류층의 사교와 결혼, 소비에 소모적인 인생이 너무나 불쾌했다. 풍자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데 적어도 ‘위대한 개츠비’처럼 완결된 풍자를 보여주던가. 이건 완벽한 조건의 남자에게 가난한(?) 집 딸이 자존심을 지키느라고 ‘풍자’적으로 쏘아붙이는 상황 말고 뭘 더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낭만주의를 따르지 않고 사실적이고 날카로운 문체로 결혼 문제를 둘러싼 중상류층의 이야기, 여기에서 이 소설이 점수를 딴 부분이라면 ‘사실적이고 날카로운 문체’일 것이다. 전혀 로맨스가 개입하지 않은, 어딘가 모르게 시니컬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문체는, 아마도 당시 여자 작가가 쓰기엔 너무 지적인 냄새가 풍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이 냄새는 첫 문장에서부터 확실하다 -재산깨나 있는 남자가 독신일 경우에 아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다-. 그래서 결론은, 엘리자베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대로 재산깨나 있는 남자가 필요로 하는 아내가 되어 준다는 말인가? 이 첫 문장에서 난 지적인 작가 제인 오스틴이 당시 중상류층을 비판하고 그 체제를 나름대로 뒤엎어버리는, -개츠비가 결국 죽는 것처럼, 또는 그 장례식에 아무도 안 온 것처럼- 그런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줄 알았다. 게다가 억압받던 여성이니까 좀 더 과격한 풍자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 허무하고 낯익은 결말은 대체 뭐란 말인가?

어쨌든 지적인 풍자를 할 줄 아는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작가 제인 오스틴과 동일 인물로 보였다. 이렇게 지적인 여자는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엔 더더욱 살기 힘들었을 것이며, 더구나 그걸 매력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을 것이다. 결국 제인 오스틴은 자신과 같은 여자를 감싸주고 매력적으로 느껴주는 남자와 결혼하길 원했고 소설을 씀으로써 대리만족 한 건 아닐까, 그렇게까지 생각했다. 뭐 그렇다고 한들 그게 나쁘단 건 아니지만.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나 동생 리디아의 이야기는 제법 재미있었다. 철없는 리디아가 위컴과 도망쳐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과정을 거쳐 결혼하는 이야기나, 그들이 곧 서로의 애정을 잃은 채 그저 결혼만 유지하며 소위 잘 나간 언니한테 손 벌리며 산다는 이야기는 그럴 듯 했고 충분히 그 내용 자체로 시원한 풍자가 되었다. 어머니의 무식한 행동과 그런 어머니를 비웃는 상류층 오만한 여성들도 이 소설이 단순히 연애 소설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물론 문체 때문에 단순한 연애 소설이 될 수도 없겠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오직 다르시와 결혼하는 결말인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난 정말 엘리자베스가 다르시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깊은 감사의 마음…어쩌고 하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야 난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깨닫고 몹시 실망했다. 엘리자베스를 사랑하는 다르시의 마음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 그 둘이 결합하는 것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되는 것이란 것도 알지만 말이다. 엘리자베스를 사랑하는 다르시는 그저 작가의 자위적 농간인 것만 같고 에브리바디 해피 설정도 우습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난 다르시가 엘리자베스를 매력적으로 느끼더라도 곧 상류층답게 돈 많은 여성을 찾아 애정 없는 결혼을 하길 바랐고, 엘리자베스는 자존심을 꺾지 않고 살다가 가난하지만 그녀의 아버지와 비슷한, 엘리자베스를 자랑으로 여기고 자상한 남자와 결혼하여 지적인 교감을 하며 살길 원했다. 이건 단지 나의 바램일까, 모두 다르시와 잘 된 걸 기뻐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 다르시 같은 이상이 과연 있을까. 환상에 빠지는 건 그렇다 쳐도 적어도 날카로운 첫 문장을 끝까지 완결할 책임은 져야하는 것 아닌가.

200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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