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도톰보리

학기 말 갑자기 ‘그래, 방학 때 해외 여행이나 가 볼까’ 란 생각이 들었다.

생일을 타국에서 보내보고 싶었고. (아마도 축하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므로 ㅜ)

그래서 갑작스럽게 ‘내일 모레쯤 출발할까…’ 하는 기분으로 이틀 뒤 비행기를 예약해 버렸다.

혼자 가는 해외여행은 처음이다.

돈이 없으므로 기념품은 거의 안 사고,  먹는 것도 제일 싼 것으로만 먹겠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컨셉이다.

 

2007년 01월 12일 첫째날

제일 싼 비행기가 ANA 항공. 간사이 공항까지가 도쿄보다 싸길래 ‘그럼 관서로 가자’ 라고 결정.

1시 30분 비행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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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01:13

원래 1시 10분에 비행기에 타야 했는데 30분으로 미루어진다.

ANA 항공 비행기가 들어온 게 보인다. 작고 귀엽다.

비행기 사진을 찍었더니 옆에 단체 관광 오신 듯한 일본 할아버지께서 니콘이라며 반가워했다.

모델을 물어보길래 입이 안 떨어져서 그냥 보여드렸더니 한참이나 안경을 찾으신다. 죄송… 사실 제가 일본어를 거의 모릅니다…

5700을 고센나나햐쿠..라고 읽어야 하는 건가, 그게 맞나, 등등을 속으로만 생각하고 안경을 찾는 걸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pm 01:40

어젯밤에 갑자기 해야 할 업무가 생겨서 한시간밖에 못잤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잠들어버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랜덤한 일이 생기고 급하게 수습해야 하는 삶은 언제 끝날까? 대학원을 끝내면 될까? 여튼 잠에서 깨어보니 뭔갈 나눠주고 있다.

마실 것은 아사히나 삿포로 맥주와 와인, 사과와 오렌지 쥬스, 차가운 차, 물 등등에서 고를 수 있었다. 이럴 경우 무조건 술이지. 삿포로 맥주를 마신다.

비행기 안에서 입국 신고서를 작성. 이런 것도 처음 해봐서 눈치로 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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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간사이 국제공항

2시간만에 일본에 도착했다. 이렇게 가까운 외국이구나.

 

pm 05

아직 지하철 난카이센 안. 5시에 체크인 예약했는데, 어째선지 난 이 전차를 한시간이 넘게 타고 있다. 가야할 곳은 오사카의 신이마미야 역 근처에 있는 라이잔 호텔. 이미 체크인이 늦었다. 전화로 설명을 하고 싶다. 하지만…’비행기가 연착해서 늦는다, 기다려달라’는 내용을 일본어로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그래도 전화를 걸어 대충 영어랑 아는 일본어를 더듬더듬 주워섬겼더니 놀랍게도 알아들어줬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오라고 한다… 제대로 알아 들은 게 맞겠지?

pm 06

헤메고 헤메서 라이잔 호텔을 찾았다. 짐이 무겁다. 메는 배낭이 없어서 손으로 드는 큰 가방에다 짐을 다 쑤셔넣고 왔기 때문.

노숙자가 많은 골목을 지난다. 놀랍게도 다들 얌전하고 예의 바르다. 길을 못 찾고 헤메고 있으려니까 웬 노숙자 아저씨가 다가와서 뭘 찾냐고 물었다. 라이잔 호텔이라고 대답했더니 따라오라고 한다. 경찰도 주변에 많이 다니고 큰 길이라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걱정한 건 오로지 많은 돈을 요구하지는 않을까, 난 진짜 돈이 거의 없는데, 였을 뿐인데 다행히 데려다만 주고 손을 흔들며 쿨하게 돌아서셨다. 아 정말 젠틀하다.

라이잔 호텔은 배낭 여행객을 위한 아주 저렴한 비즈니스 호텔이다.  큰 길에 바로 접해있어서 좋았다. 지하철 역하고도 가깝다. 내 방은 싱글룸 다다미방. 침대방보다 조금 더 쌌기 때문에 다다미방을 택했다.

일본에 왔으면 역시 다다미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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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좁은 것도 아늑해서 마음에 든다. 수건 2장, 칫솔, 한번 쓸 분량의 치약, 종이컵, TV, 냉장고, 에어컨, 히터, 티슈 두장, 재떨이, 잠옷용 가운 등등.

직접 이불을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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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는 놀랍게도 새털 베개. 이불도 푹신하다.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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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머무르는 내내 밤마다 여기 앉아서 여행기를 쓰게 된다.

 

 

 

 작은 상도 있다.

pm 07

굉장히 피곤해서 조금 앉아있었으나 아무래도 배고파서 죽을 것 같다.

내일부터 돌아다니려면 잘 먹지 않으면 안되겠지, 생각해서 다시 옷을 주워입고 밖으로 나왔다. 오사카는 따뜻하다. 내 옷은 덥다.

호텔 바로 옆 건물 작은 밥집에서 뭔지 읽을 수는 없었지만 가격은 300엔이라고 적혀 있는 무언가를 시켰다. 밥과 (양도 충분하다. 일본인은 소식한다고 알고 있어서 걱정했는데) 된장국과 아주 짠 단무지 2조각이 나온다.

거긴 일본의 할아버지들밖에 없었다. 보통의 관광객들은 이런 소탈한 건 굳이 안 먹겠지. 할아버지들은 스모를 보고 있었는데, ‘지금의 일본은 약해, 무르다. 옛날이 좋았다’ 고들 말하고 있다. 어째서인지 갑자기 조금씩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애니메이션의 힘인가)

밥 먹고 나서 돌아갈까 싶었지만, 하루가 아까워서 그대로 도톰보리 거리로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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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다치바나 켄지 씨

밥을 먹고 나서 거리를 걷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멋지구나’ 라고 말을 걸어왔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대답했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주고쿠진까? 타이완?’ 이라고 또 묻길래 ‘캉코쿠진데스’라고 대답했다. 스스로 말하면서도 내가 일본어를 입 밖으로 내고 있다는 것이 신기. 여튼 그러자 반가워하는 태도로 마침 옆에 있던 엄청 큰 오코노미야키 가게를 가리키며 한 잔 하겠느냐고 묻는다.

‘돈이 없다’고 말했더니 자신이 한 턱 낸다며 내게 오코노미야키와 야채 덴뿌라를 사주신다. 맛있다. 오사카의 오코노미야키라니! 시켜준 걸 모조리 다 먹었다. 특히 아스파라거스를 튀긴 것이 맛있었다. (방금 밥을 한 대접이나 먹었지만) 소스는 공유되는 것이므로 무조건 처음 한 번만 찍는 것이 규칙이라고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치바나 켄지는 이 근방 거리에서 빠칭코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시라고 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다치바나 겐지 씨가 나를 안내하기 시작한다. 내게 일본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도톰보리 Dotombori 道頓堀

이 게 간판, ‘우물쭈물 하지 마’ 라는 만화에서 보고 궁금했던 건데 실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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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톰보리의 유명한 움직이는 게 간판이라고 한다. 같은 걸 세 개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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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거리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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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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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다코야키 쯤으로 적혀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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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게이트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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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톰보리에서 유명한 라면집이라고 한다. 

배불러서 못 먹어봄. 다음에는 꼭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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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간판이 길가에 떡하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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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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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다오레타로’ 라고 한다. 외우기 어렵다.

최초의 움직이는 간판이었기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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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톰보리에서 커피가 제일 맛있는 가게…라고 켄지 씨가 말함

켄지 씨가 사주신다. 난 양이 많은 걸 좋아하는데 일본의 커피는 잔이 정말 작다. 너무 맛있는 커피인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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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코 간판

이것이 그 유명한 그리코 제과의 간판. 정말 크다.

나는 그리코라고 하면 60년대 아톰 오프닝이 생각난다. 그리코 제과가 후원한 오프닝이 있기 때문. 이 간판은 도톤보리가와라는 작은 강 근처에 있다.

찾아보니 이 간판에 사용된 네온은 7색 4460개이며 높이 20m, 너비 11m로, 처음 등장한건 1935년이고 이건 5번째라고 한다. 굉장하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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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코 간판 왼쪽편에 있는 간판. 야구는 잘 모르지만 이건 아무래도 이치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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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이바시 길. 아케이드. 난 왠지 아케이드 길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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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있었다. 앞에 무슨 카미가 있는데 물을 세 번 뿌리고 기도하면 된다고 한다. 켄지 씨가 알려줘서 나도 함. 병이 낫고 어쩌고 하는 물신이라던가 그랬던 것 같다. 켄지 씨 말을 전부 알아듣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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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만담으로 유명한 예능인의 건물이라는 듯. 역시 예능은 관서인가.

내가 듣고 있는 일본어를 제대로 맞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 모두가 추측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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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신지 모르지만 기꺼이 사진에 찍혀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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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좋다.

 

신이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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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히타치 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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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뭔가에 홀린 듯이 히타치탑을 계속 찍고 있자, 켄지 상이 히타치 탑을 배경으로 나를 찍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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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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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땐 지하철을 이용.

돌아와 보니 밤 11시. 와 엄청 피곤하다. 그래고 잊기 전에 하루치 여행기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