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 : 60년대

60년대부터 CF가 아닌 작품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습니다.

60년대 한국 애니메이션의 키워드라고 하면, 홍길동, 박영일, 세기상사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은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서 아마도 애니메이션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실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중요한 인물로 박영일을 꼽고 싶습니다. 박영일은 최초의 순수 애니메이션을 실험한 뒤 세기 상사에서 많은 작품을 만들면서 한국의 60년대를 책임지지요. 아마도 세기 상사에서 일하던 김청기 등의 쟁쟁한 후진을 양성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럼 61년부터 찬찬히 보기로 합시다.


1961년 : 최초의 순수 애니메이션

  • 개미와 베짱이 : 박영일, 국립영화제작소

한국 최초의 순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는 1961년 국립영화제작소의 <개미와 베짱이>입니다. 이솝 우화를 소재로 한 5분 정도의 애니메이션 실험작이었지요.  박영일이 감독하였고, 정도빈은 원화를 담당하였습니다.

CF를 제외하고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
<개미와 베짱이>, CF를 제외하고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

정말 보고 싶은데 저도 아직 못 보았어요.

이렇게 단편 실험작이 만들어지고 6년 후, 고퀄리티의 컬러 장편이 등장합니다.


1967년 :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

  • <홍길동> : 신동헌, 세기상사
  • <호피와 차돌바위> (8월) : 신동헌
  • <쾌남 홍길동> : 박삼천(신동헌), 세기상사
  • <흥부와 놀부> : 강태웅, 은영필림

한국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은 1967에 등장합니다.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이지요. 형님이신 신동우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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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은 그림판을 모아서 가로 길이를 쟀을 경우 3,459,000 cm로 남산 높이 150배에 달하고, 그림판 장수는 125,300 장, 제작비는 5,400만원으로 당시 국내 영화 10개 작품제작비에 해당했어요. 그걸 가능하게 한 세기상사가 대단하죠.

게다가 선녹음/후작화 방식에, 제작비를 줄일 수 있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이 아닌 풀애니메이션(full animation)이었습니다. 고퀄리티라고 말한 것은 이런 점 때문이에요.

풀애니메이션은 물론, 선녹음 방식은 미국의 디즈니와 같은 대자본 애니메이션에서나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미리 그려놓은 그림에 대사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녹음된 대사에 맞춰 제작을 해야 하므로 시간과 노력, 제작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게 되고 제작도 까다롭습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TV 애니메이션은 다 후녹음 방식이에요. 입을 뻐끔뻐끔하는 애니메이션에 성우가 타이밍을 맞춰 대사를 치죠. 그래서 가끔 어떤 애니메이션에서는, 충분히 대사 칠 시간을 주지 않아서 성우가 급히 말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신동헌 감독님의 말씀에 따르면, 개봉은 1967년에 했는데, 제작은 65년부터 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속도를 생각하면 굉장히 오랫동안 작업한 거죠.

그리고 무려 같은 해 8월에, 신동헌 감독님은 <호피와 차돌바위>를 개봉하는데, 이 역시 대단히 흥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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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세기상사는 신동헌 감독님과의 불화로, <쾌남 홍길동>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개봉하기도 했어요. 이때 포스터에 적힌 감독이름은 왠지 ‘박삼천’으로 되어있습니다. <쾌남 홍길동>을 못 본 관계로, 신동헌 감독 버전을 그대로 쓰고 이름만 바꿨는지 어느 정도 어레인지 했는지 알 수가 없네요. 하지만 포스터만 봤을 땐 작화는 분명 신동우 화백의 것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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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천과 세기상사… 뭐하십니까

 

<홍길동>이 개봉한 같은 해 1967년, ‘은영필림'(필름이 아니고 필림)에서 강태웅 감독의 <흥부와 놀부>를 개봉했습니다. 이것은 인형극 애니메이션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로 보면 매우 레어한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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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동용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활발하게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1968년

  • 박영일, <황금철인>

1968년엔 박영일 감독의 <황금철인>이 개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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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일 감독의 <손오공>과 <보물섬>은  다음 해인 1969년에 개봉됩니다.


1969년

  • 박영일, <손오공> , 세기상사. (기획 용유수, 원화구성 한성학, 원화 김청기)
  • 박영일, <보물섬>
  • 용유수, <홍길동 장군>, 세기상사. (원화구성 정도빈)

박영일 감독은 위에서 말했듯이, 최초의 애니메이션인 ‘개미와 베짱이’의 감독이기도 하죠.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일 년에 한 감독의 작품이 두 편 씩이나 개봉해요. 근성으로 만들어냈나봐요. 이때도 애니메이션은 3D 직종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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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손오공>의 크레딧을 보시면, 기획에 용유수, 원화구성에 한성학(개미와 베짱이의 공동 제작자라고 알려져 있어요), 원화에 김청기가 있죠. 용유수는 이후에 계속해서 감독을 하고, 김청기는 나중에 그 유명한 <로보트 태권V>를 감독합니다. 그렇게 보면 세기상사는 한 때 일본의 도에이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나 봐요.

기획을 맡았던 용유수는 같은 해에 개봉한 <홍길동 장군>에서는 감독을 했어요. 같은 해에 한 작품의 기획을 하고 다른 작품의 감독을 해서 개봉하는 이 바쁜 시스템은 그렇다치고, 왜 또 홍길동이야…

그리고 깨알같이 원화구성에 정도빈이 있습니다. 개미와 베짱이에서 원화를 맡았던 바로 그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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