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피노키오

1. 게으름뱅이 

어두컴컴한 겨울 새벽, 피노키오는 발걸음을 옮기며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빵을 조금씩 뜯어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크림이 들어 있는 큼직한 빵은 달고 부드러웠습니다. 하루 일당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것 중에서는 이 크림빵이 제일 크고 맛있었기 때문에 피노키오는 주로 이 빵을 먹었습니다.

거친 잡곡빵 같은 것은 오히려 건강식이라고 해서 피노키오가 일하는 공장의 주인같은 사람들이나 사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공장 주인의 방식대로, 신선한 유기농 채소와 과일, 그리고 감귤 향기가 감도는 홍차를 곁들이면 아무리 잡곡빵이라도 맛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피노키오의 빵에서는 우유나 버터의 맛을 흉내내는 화학물질들이 훌륭히 그 역할을 합니다. 피노키오는 유화제로 만들어진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을 맛보며 즐거운 기분을 느꼈습니다. 입에 대는 순간 사르르 녹는 농후한 지방의 맛! 이런 가짜 지방이 몸에 나쁘다는 경고는 피노키오 역시 어디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크림빵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오랫동안 일해도 배가 쉬이 고프지 않으며, 작은 잡곡빵 하나 살 가격으로 큼직한 것 세 개나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장의 정문 앞에는 사람들이 벌써 길게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있었습니다. 피노키오처럼 아직 어린 소녀, 소년들도 많았습니다. 모두들 호주머니에 넣은 크림빵을 뜯으며 줄을 맞춰 걸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생산 벨트는 끊임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따로 식사시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의 옷에는 빵을 넣을 넉넉한 호주머니가 달려 있었습니다. 피노키오는 줄 끝에 서며, 앞에 있는 동료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

“여, 좋은 아침! 오늘은 제 시간에 나왔네?”

‘이달의 직원’을 노리는 덩치 큰 아를레키노가 큰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피노키오보다 네 살 많은 아를레키노는 벌써 변성기가 왔는지 목소리가 어른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크림빵을 너무 많이 먹곤 해서 벌써부터 볼과 배가 불룩했고, 눈에는 언제나 피곤을 숨기지 못한 붉은 핏발이 보였습니다.

이달의 직원이 되면 약간의 보너스가 나옵니다.  공장 정문에는 ‘도전하는 열정, 꿈이 있는 미래’라고 크게 써붙여져 있었습니다.

피노키오는 아를레키노의 뒤에 서서 안도감을 느끼며 졸린 하품을 했습니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굳게 결심한 덕분인지 오늘은 늦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각 10분 당 한 시간의 추가 벌 근무를 해야 합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잠든 덕분인지 중간에 자꾸 깨는 바람에 몹시 피곤하기는 하지만, 여튼 지난 한 달간 했던 추가 근무를 오늘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자꾸 게으름 부리다간 당나귀가 된다고.”

아를레키노가 놀리듯 말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한 달간 매일 지각한 피노키오는 감봉은 물론이고 ‘이달의 게으름뱅이’로 찍혀  당나귀가 될 위기였던 것입니다.

2. 재미있는 서커스

추가 벌 근무는 없었지만 야근등에 불이 들어오는 바람에 늦게까지 일한 피노키오는 어서 공장 기숙사에 돌아가 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를레키노가 같이 야간 서커스를 보러 가자고 조르는 것이었습니다.

“서커스?”

“깜짝놀랄만큼 예쁜 아가씨들이 나온단 말이야. 내가 몰래 들어갈 수 있는 개구멍을 알고 있어. 일년에 한번밖에 안 오는 거라고.”

“나는 자고 싶어.”

평소에 연극이니 그림이니 보러 갈 기회가 없었던 피노키오는 그런 것 자체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를레키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중 묘기에 동물 쇼도 볼 수 있는데?”

“아, 공중에 가로지른 줄 위를 걷는 것 말이지? 그리고 동물 쇼라니, 그건 뭐지? 들어 본 적 없어.”

“바보야, 귀여운 동물들이 잔뜩 나와서 불타는 고리도 뛰어넘고 아슬아슬한 묘기도 하는 거라고.”

마침내 피노키오도 흥미가 생겨서 아를레키노를 따라 재미있는 쇼라는 것을 보러 갔습니다. 아를레키노는 동물 천막에서부터 무대가 있는 큰 천막으로 통하는 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길은 동물들을 무대 뒤로 이동시키기 위한 통로로, 동물 쇼가 시작될 때까지는 아무도 와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동물들은 좁은 우리에 갇혀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피노키오는 아를레키노를 따라 동물 우리 사이를 지나 무대 뒷편으로 이동했습니다. 피부에 곰팡이가 핀 원숭이들은 피노키오와 아를레키노를 보고 문짝을 잡아 흔들었고, 털이 꺼칠한 개들은 철창 사이로 주둥이를 내밀고 구슬픈 소리로 낑낑 울어 댔습니다.

무대 뒤에 몸을 숨기고 자리를 잡자, 쇼는 물론 관객석의 관객들까지 훤히 보였습니다.

“피노키오, 저길 봐.”

아를레키노가 가리킨 특등석에는 공장 주인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동행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작업반장이자 공장 주인의 아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공장 주인은 옆 자리의 점잖 빼는 신사에게 말을 걸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사장한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

쇼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당나귀와 개들이 탑 쌓기 묘기를 보여주면서 위험하게 흔들릴 때는 관객들이 모두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다가 제일 위에 있던 하얀 강아지가 우스꽝스러운 꼴로 떨어지자, 관객들은 더 크게 박장대소하였습니다.

“저거 다 짜고 하는 거야.”

하얀 강아지가 다치진 않았을지 피노키오가 걱정하자 아를레키노가 일러주었습니다.

“하지만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는걸? 조련사가 끌어냈잖아.”

“그런 것까지 짜고 하는 거라니까.”

아를레키노가 비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벌거벗은 무희들이 안전 장치 없이 공중 그네도 타고, 단검을 던져 머리에 올린 사과를 맞추는 아슬아슬한 묘기도 보여주었습니다. 무희들 중에는 아를레키노나 피노키오와 비슷한 또래의 어린 소녀들도 많았습니다. 소녀들은 작고 가벼웠기 때문에 더 높은 곳에서 더 위험한 연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관객들은 만족한 듯 성대하게 박수를 쳤습니다.

“오늘 재미있었지?”

천막을 나오며 아를레키노가 물었습니다. 피노키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렇게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볼거리를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내일 또 보러 가고 싶지만 며칠 연속으로 보기엔 잠이 너무 부족해서 안 되겠어.”

아를레키노가 하품을 하며 말했습니다.

“나도야. 공장 따위 가지 않고 매일 매일 쇼를 본다면 좋겠어. 아주 재미있을 텐데.”

“참, 오늘 쇼 보러 간 건 모두에게 비밀로 해.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노는 데에만 관심있다고 혼날 테니까.”

아를레키노가 다짐을 두었습니다.

동물 우리들이 잔뜩 있는 천막을 지날 때 동물들은 다시 시끄럽게 울어대었습니다. 피노키오는 그 자리에 멈춰섰습니다.

“왜 그래?”

“여기 하얀 강아지가.”

아까 묘기를 부리다가 떨어진 강아지가 구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혀를 길게 빼물고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흰 털에는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강아지를 살펴보던 아를레키노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간신히 숨은 붙어 있는 모양이지만, 곧 죽겠는 걸. 그래서 그냥 버려두었나 본데.”

“거봐, 역시 사고였잖아.”

피노키오는 강아지가 가여워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굳게 결심을 하고 저고리를 벗어 강아지를 감싸 안았습니다.

“어쩌려고? 기숙사에서는 동물을 기를 수가 없잖아.”

“하지만 죽게 놔 둘 순 없는 걸.”

“알아서 해. 난 모른다.”

아를레키노가 어깨를 으쓱하였습니다.

3. 거짓말쟁이

다음 날, 피노키오는 출근 줄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아를레키노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를레키노는 오후가 다 되어서야 나타났습니다. 작업반장은 노발대발 했습니다. 덩치가 좋은 청년인 작업반장은 곧 아버지인 공장 주인으로부터 공장을 물려받게 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째서 10분 20분도 아니고 3시간이나 늦냔 말이야. 대체 뭘 하다 늦은 거야?!”

피노키오는 분주하게 손을 놀리면서도 걱정스레 아를레키노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어서 말하지 못해? 이 천하에 쓸모없는 돼지 녀석아!”

작업반장의 호령에 아를레키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느… 늦잠을 자는 바람에요.”

“늦잠이라고!”

작업반장은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매일매일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느라 피로가 쌓였나 봐요.”

“그걸 변명이라고 지껄이는 거냐! 게을러가지고 피둥피둥 살이나 찐 녀석이! 운동 좀 해, 운동 좀!”

작업반장이 아를레키노의 배를 꾹꾹 찌르며 호통을 쳤습니다.

“이런 약해빠진 정신 상태를 가진 놈은 이달의 직원의 자격이 없지. 지난 달 지급된 보너스만큼 이번 월급에서 깎일 줄 알아!”

아를레키노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부지런히 일해서 얼른 돈을 모아 작은 잡화점을 차리는 것이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그였기 때문입니다.

“너무해!”

피노키오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습니다. 작업반장이 피노키오 쪽을 돌아보았습니다.

“지금 말한 건 누구야?”

피노키오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오호라, 너로구나. 이 달의 게으름뱅이. 네 주제에 무슨 염치로 남의 역성이나 들어주는 거야?”

“하, 하지만 아를레키노가 한 달이나 성실하게 노력했는데 한 번 지각했다고 물거품이 되는 건 좀…”

피노키오는 변명하듯이 말했습니다.

“닥쳐!”

그때였습니다. 기숙사를 관리 감독하는 사감이 다리에 붕대를 감고 절뚝거리며 걷는 강아지를 한 마리 끌고 들어왔습니다. 피노키오가 데려온 그 흰 강아지였습니다. 강아지는 보기보다 크게 다치진 않았는지 밤새 돌보아 주자 기운을 회복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감이 작업반장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자, 작업반장은 무서운 눈으로 피노키오를 돌아보았습니다. 피노키오는 나쁜 예감이 들었습니다.

“피노키오, 이리 나와. 이 개를 본 적이 있지?”

작업반장은 피노키오 앞에 강아지를 발로 디밀며 물었습니다.

“저기… 저…”

피노키오는 우물쭈물 했습니다.

“기숙사에서는 동물을 기를 수 없다는 규칙을 알지?!”

그렇게 으름장을 놓던 작업반장은 문득 강아지를 유심히 살피며 말했습니다.

“가만, 이 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렇군, 묘기 부리던 개로군!”

피노키오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공장 주인과 그의 아들인 작업반장도 서커스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작업반장은 요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피노키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어린 녀석이 밤에 건전하지 못하게 놀러나 다녔단 말이지? 그러니 지각을 밥 먹듯 하지! 게다가 남의 것을 훔치기까지 하다니!”

피노키오는 놀러 나간 건 어제 단 하루 뿐이었으며, 강아지는 다쳐서 버려진 걸 주워왔을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작업반장은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놀기 좋아하는 게으름뱅에 불량한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작업반장이 피노키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자, 갑자기 강아지가 멍멍 짖으며 덤벼들어 작업반장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앗! 날 물었어! 이봐, 어서 이 개를 떼어 줘!”

작업반장은 겁이 나 다리를 털며 외쳤습니다. 그 모양이 몹시 우스꽝스러워 바라보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피노키오는 깜짝 놀라 강아지를 얼러서 간신히 떼어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반장님.”

작업반장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주먹으로 피노키오의 얼굴을 세게 후려쳤습니다. 피노키오의 코에서 피가 후두둑 쏟아지더니, 놀라운 속도로 붓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코뼈가 부러진 모양입니다.

“알겠어? 이게 거짓말한 대가야! 앞으로 또 거짓말을 할 때마다 네 코를 부러뜨려 놓을 테다! 이 거짓말쟁이!”

그런 일이 있고서 코는 전혀 나을 기미가 없었지만, 의료보험이 없었던 피노키오는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작업반장이 때려서 그렇게 된 것이므로 산재처리하면 어떨까?”

“응, 산재처리 해야지.”

“맞아, 맞아.”

누군가 산재 이야기를 하자 소년들은 아는 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은 다들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저 직원이 자주 근무태만이라 훈계하던 과정에서, 워낙 반항이 심해 어른으로서 훈계차 손찌검을 좀 했을 뿐입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어딘가에서 경위를 물어보러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피노키오를 만나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작업반장의 말만 듣고, 그의 다리에 물린 상처만 보고는 돌아갔습니다.

결국 피노키오의 코는 삐뚤어지고 코뼈가 튀어나와 매부리코처럼 굳어져 버렸습니다.

“이봐, 거짓말쟁이 피노키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커진대요!”

“그만, 킁, 그만 놀리라고. 킁킁.”

“하하하하.”

코가 그렇게 된 이후로 피노키오는 왠지 숨쉬기가 곤란하여 킁킁거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동료들은 기괴하게 생긴 큰 코를 킁킁거리는 피노키오를 볼 때마다 ‘거짓말장이 피노키오’라고 놀렸습니다.

4. 당나귀

어느 날, 피노키오는 발주처에 서류를 전달하라는 심부름을 하기 위해 한 낮에 서커스 천막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환한 시간의 서커스 천막은 기억만큼 그렇게 화려하고 열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저분하고 초라했습니다. 피노키오는 천막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나갔습니다. 그때 무언가가 피노키오를 덮치는 바람에 피노키오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앗, 너는?”

정신없이 자신의 얼굴을 핥는 강아지를 발견한 피노키오는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예전에 구해주었던 흰 강아지였습니다. 그 이후로 본 적이 없었던 지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꼬마, 이리 와.”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자, 천막 앞에서 다 낡은 발레복을 입은 소녀가 보였습니다. 소녀는 천막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흰 강아지는 도로 소녀에게로 달려갔습니다.

“한 대 피울래?”

소녀가 담배갑을 내밀며 물었습니다. 피노키오는 망설였습니다.

“아픈 데엔 특효란 말이야.”

소녀는 붕대를 감은 발목을 내보이며 말했습니다. 피노키오는 머쓱해져서 말 없이 다가가 소녀의 손에서 담배를 받았습니다. 소녀가 하는 대로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이자, 머리가 핑 도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것도 잠시, 곧 피곤이 가시고 코가 부러진 이후 생긴 두통도 사라졌습니다.

“어때?”

“날아갈 것 같은데, 킁.”

피노키오의 말에 소녀는 피노키오의 손을 잡아끌고 천막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안에는 입에 담배를 물고 당구를 치는 무희들이 가득했습니다. 대부분 피노키오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들이었습니다.

“어린 애들이 킁킁, 담배를 피우고 당구를 치다니, 그러면 못 써.”

“뭐, 어때. 담배를 안 피우고 당구를 안 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 걸.”

저 쪽에서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소녀가 말했습니다. 그 말에 모두들 깔깔 웃었습니다.

“자, 너도 쳐 보지 않을래?”

소녀가 손에 잔을 쥐어주면서 물었습니다. 피노키오는 소녀가 준 잔에 든 음료를 홀짝 마셨습니다. 긴장이 풀어지면서 더욱 기분이 명랑해졌습니다. 피노키오는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서 소녀들과 당구 게임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피노키오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았습니다.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느껴 눈을 떴을 땐 어두컴컴한 지하였습니다. 피노키오는 더럭 겁이 났습니다.

“사람이 갇혔어요! 킁, 내보내 주세요!”

피노키오가 부산을 떨자 주변에서 짜증을 부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저 멀리서 램프가 하나 켜졌습니다. 램프의 불빛을 통해 한 노인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얼른 자두는 게 좋아, 꼬마.”

“네? 여긴 어디죠? 킁킁.”

“어디긴, 여긴 축사야. 그것도 몰랐어?”

피노키오는 깜짝 놀랐습니다. 축사라면 공장에서 당나귀가 된 사람들이 지내는 기숙사였습니다.

“설마, 킁킁, 제가 당나귀가 되었나요?”

“알았으면 어서 자라고.”

램프가 다시 꺼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불평이 들려왔습니다. 피노키오는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당나귀란, 공장에서 근태가 불량한 사람들에게 시키는 직급이었습니다. 공장에 피해를 끼친 벌로서 ‘당나귀’가 되어 가장 힘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노키오는 어둠 속에서 곰곰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소녀들과 당구 게임을 하느라고 술에 취한 채 늦게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작업반장은 대노하여 피노키오를 바로 여기로 끌고 왔습니다. 모든 게 떠오르자 피노키오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술, 담배는 물론이고 천박한 유랑 소녀들과 당구를 치며 놀다니! 너무나도 부끄러운 짓을 저질러 버린 것입니다.

5. 나무인형 

다음 날 꼭두새벽부터 피노키오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당나귀가 하는 일이란 하루종일 무거운 자재를 나르고, 뜨거운 화로에 불을 지피고, 커다란 쇠사슬이 감긴 도르래를 돌리는 등, 진짜 당나귀가 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잿빛 노동복 차림으로 무거운 등짐을 지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는 당나귀라는 이름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습니다. 당나귀의 일은 고되고, 또한 위험했습니다.

처음 피노키오에게 말을 걸어줬던, 제페토란 이름의 할아버지는 당나귀로서 일하다가, 그만 다리가 절단당하는 사고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짤막한 다리에는 대신 나무로 만든 의족이 달려 있었습니다. 다리 때문에 다른 일은 하기가 곤란해서 어쩔 수 없이 계속 당나귀로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제페토 할아버지 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당나귀들은 다들 한 두 개씩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업반장은 그러니 모두들 당나귀로 있고 싶지 않다면 다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곤 했습니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가 힘들다고 울상을 지을 때마다 다정히 달래주었습니다.

“공장 입장에선 말이야, 멀쩡한 사람대신 병신들을 계속 써주자니 손해가 막심하지 않겠어?”

“킁.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도 우리를 내쫓는 대신 당나귀로라도 남아있게 해주고, 게다가 임금까지 주니 얼마나 다행이냔 말이야. 다치는 이유는 우리가 안전 수칙을 안 지켜서 그런 건데 말이야.”

“……”

“자주 다치는 것도 민폐라고. 건강한 것도 의무라는 거야.”

피노키오는 제페토 할아버지의 말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지금까지 불평불만만 가득했던 생각을 고치고 다시 바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할당량를 채우기 위해 안전 수칙을 건너뛸 때마다, 다 자신의 손이 빠르지 않고 행동이 굼뜨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반성하였습니다. 그러자 종내에는 어떤 불만도 없고, 어떤 힘든 일도 참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피노키오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노키오는 할당량을 빨리 채우고 싶은 마음에 안전 수칙을 건너 뛰고 작업하다가 그만 쇠사슬에 팔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도드래의 쇠사슬에 옷자락 등이 말려들어가지 않도록 큰 뚜껑을 씌워야 하는데, 그것을 씌우면 도르래가 더 무거워지고 쇠사슬이 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안전 수칙을 모두 지키면서 할당량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피노키오의 비명에 당나귀들이 달려왔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 거대한 도르래를 멈추고 피노키오의 팔을 빼내기 위해 애썼지만, 너무 늦어 팔을 살릴 수 없어 보였습니다.

“뭐야? 왜 작업이 중단되는 거야?!”

작업반장이 왔을 때, 피노키오가 막 도르래에서 풀려났을 때였습니다. 피노키오는 까맣게 죽은 팔을 잡고 겨우 한 마디 말 할 수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킁. 제가 부주의해서 그만…”

그 후 피노키오는 절단된  팔 대신, 제페토 할아버지나 다른 당나귀들처럼 나무로 만들어진 의수를 끼게 되었습니다. 의수는 제페토 할아버지가 깎아서 만들어주었습니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조각을 잘 했기 때문에 썩 그럴 듯한 팔을 만들어 줄 수 있었습니다.

나무 의수를 끼게 되자 더욱 작업이 더뎌졌습니다. 그런 채로 무리하여 일하던 피노키오는 결국 한쪽 팔, 두 다리, 한쪽 눈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친절한 제페토 할아버지는 나무로 대신할 것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없어진 한쪽 귀는 굳이 만들어 붙일 필요가 없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인형이래요, 나무인형 피노키오래요.”

“그만, 킁킁, 놀리란 말이야, 킁.”

움직일 때마다 삐걱 삐걱 소리가 나는 피노키오를 향해, 이제 모두들 ‘나무인형 피노키오’라고 부르며 놀렸습니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화로 앞에서 너무 오랫동안 일하는 바람에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후부터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나귀들이 말하길 고래에게 먹혔다고 했습니다. 피노키오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아직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해고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피노키오는 곧바로 다음 사고를 당했습니다. 모든 사고는 이전의 사고보다 더 짧은 간격으로 일어났었습니다. 이번 사고는 마지막으로 귀를 잃은지 겨우 일주일 만이었습니다.

이제 두 팔 전부를 잃은 피노키오는, 몸의 절반이 나무 인형이 된 셈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말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밀폐된 지하에서 도색 작업에 쓰는 약품을 많이 흡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작업반장이 피노키오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는 고래만이었습니다. 절벽 위에서 보면 바다의 모양이 고래처럼 생겼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래만이라고 부르는 곳이었습니다. 피노키오는 겁에 질려 아직 일을 할 수 있다고 울부짖었지만, 당나귀처럼 힝힝대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쓸모없는 당나귀! 이제 넌 더 이상 필요가 없어!”

작업반장은 피노키오를 걷어차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피노키오는 모래사장에 처박혔습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충격으로 가짜 눈알은 물론 의족과 의수가 모두 날아가버렸습니다. 파도가 덮치면서 피노키오의 뭉툭한 몸뚱이는 물 속에 잠겼다가 다시 드러나곤 했지만 꼼짝달싹 할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이미 숨을 거둔 제페토 할아버지가 보였습니다.

피노키오의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그때 눈 앞에 해초처럼 푸른 머리를 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피노키오에게 소원을 물었습니다.

“사람이 되고 싶어요.”

피노키오가 그렇게 대답하자, 천사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나무인형 말고요.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예전처럼요.”

그 말에 천사는 빙긋이 웃었습니다.

“나무인형 피노키오야, 넌 온전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단다.”

결국 피노키오는 파도에 서서히 끌려들어가 고래만에 잠겨버리고 말았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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