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백석의 ‘수라’에 대한 장르적 변용 연구

동네에 해롭기 짝이 없는 노친네가 있다. 예전부터 작은 전파상을 운영해오긴 했는데, 요즘은 가게 문만 열었다 뿐이지 장사를 할 생각이 없다. 따로 집은 없고 가게 깊은 구석 1평짜리 방에서 먹고 잔다.

왜 해롭다고 했냐면, 맨날 가게 앞에 내놓은 플라스틱 의자에 늘어난 난닝구 차림으로 앉아 참이슬을 병째 들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꾸벅꾸벅 졸다가도 갑자기 비명 비슷한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분을 못 이기고 한국 정부를 욕하며 셔터문을 쾅쾅 쳐대서 지나가는 사람을 기겁하게 한다. 지금은 등이 굽은 노친네지만 젊었을 때는 한 주먹 했던 듯, 뼈대가 크고 어깨가 제법 넓어서 나 혼자 그 앞을 지나갈 때는 긴장을 해야 한다.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라도, 자기 앞에 있는 게 누군지 꼭 알아내려는 듯 한참을 쏘아본다. 나는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착각이라도 하고 덤벼올지 몰라 무섭다. 그 무서움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던 듯, 민원이 여러 번 들어간 모양이다.

종종 경찰이 데려가곤 했다. 한참 후엔 조서를 쓰고 풀려났는지 터덜터덜 돌아온다. 그때마다 그 노친네는 약 일주일 정도 풀이 죽어 골방에 틀어박혀 있지만,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어느 날 나는 또 무서워하며 혼자서 노친네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날 노려보던 노친네는 갑자기 날 불렀다.

“저기, 거, 아가씨.”

나는 무시하고 얼른 뛰다시피 지나갔다. 그가 쫓아올까봐 무서워서 그 순간엔 뒤도 돌아볼 수 없었다. 도망치는데 겨드랑이니 손바닥이니 땀이 솟았다. 한참 후에 돌아보니 노친네는 그냥 의자에 앉아서, 멀어진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사납거나 노여운 표정은 아니었다. ‘감히 날 무시해?’ 같은 느낌은 없었다. 도망간 내 쪽이 더 당황스럽게도 ‘놀라게 해서 미안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눈이 너무 슬프고 민망해서 나도 왠지 눈물이 났다.

나는 다시 노친네에게 돌아갔다. 내가 돌아가자 노친네는 좀 놀란 눈치였다. 그는 다가오는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아까 저 부르셨어요?”

그렇게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게 되었다.

“그게 뭔지 묻고 싶어서…”

노친네가 가리킨 것은 내 가방에 달린 와펜이었다. 동그라미 위에 노란색으로 번개 아이콘이 그려진 장식용 패치가 그의 입을 열게 한 것이다.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이 늙은이가 알아들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대답했다.

“이거, 만화 주인공이 가슴에 붙이고 다니는 그림이에요. 그 뭐냐… 악당하고 싸울 때 입는 유니폼이 있거든요.”

“슈퍼맨 같이?”

아, 이 정도면 이해시키기 문제없다. 나는 반갑게 말을 받았다.

“네네, 플래시라고 번개처럼 빠른 영웅이 있는데, 걔 심볼이 이거예요.”

“근사하네.”

노인네는 유심히 번개 아이콘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가 전파상 주인임을 기억해냈다. 전기를 상징하는 익숙한 이미지가 마음에 든 것일까?

“이거 드릴까요?”

“나한테?”

그는 아주 놀랐다.

“비싼 거 아냐?”

“하나도 안 비싸요. 인터넷에서 500원 밖에 안 해요. 저 하나 또 있어요.”

나는 옷핀을 풀어 와펜을 떼어내, 황망해하는 노친네의 손에 강제로 쥐어주었다. 노친네의 얼굴에는 미안함, 고마움, 갖고 싶어도 참아야 해, 라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표정으로 속내를 다 들키고 있는 주제에, 다시 돌려주려고 부득부득 고집을 피우며 일어나려 해서 나는 또 달아났다.

“할아버지 가지세요!”

이번엔 무서워서 달아난 게 아니었다.

+++

그 후로 난 간혹 노친네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가끔은 서서 잡담을 나누는 사이까지 됐다. 날 반기는 노친네의 난닝구에는 항상 내가 준 와펜이 매달려 있었다.

내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친네는 분노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어서-여전히 깡소주는 마시지만- 경찰이 오는 일도 드물어졌다.

어느 날인가 며칠 째 노인네가 보이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조서 좀 쓰고 왔나보다 여겼을 테지만 지금은 걱정이 되었다.

노친네를 못 본지 이주일 째가 되자 더 이상 가만있기 힘들었다. 근무 없는 날 저녁, 나는 전파상 앞에 한참을 서서 갈등하다가 셔터를 조금 올려보았다. 잠궈놓지도 않은 듯, 셔터는 저항없이 스르르 올라간다.

나는 셔터의 안 쪽 문을 열었다. 심장이 터질 듯 두근두근했다. 냄새라도 조금 이상하면 바로 돌아나가 누가 고독사 한 것 같다고 신고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어두운 전파상 안에는 특유의 금속 냄새 뿐, 별 다른 이상은 없었다.

“할아버지, 계세요?”

가게 안 어둠을 향해 조심조심 진입해, 뿌연 간유리가 끼워진 미닫이 문 앞까지 왔다.

“할아버지?”

간유리를 톡톡 두들겨 보았다. 잠시 기다려봤지만 아무 기척이 없기에, 나는 할 수 없이 몸을 돌렸다.

탁-

그 순간 내 뒤로부터 빛이 쏟아지며 어둡던 전파상 내부가 한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방 안의 불을 켠 것이다.
불이 들어옴과 함께 내 머리속도 밝아졌다. 이 노친네는 내가 들어와줬으면 하지만, 자신이 먼저 권할 염치는 없고, 내가 사람이 없는 줄 알고 가려고 하자, 딴엔 머리를 굴려 자기 있다고 알린 것이다. 마침 불을 켜려 했을 뿐이란 듯이, 자연스럽게.

이제 내가 뻔뻔함으로 답할 차례였다.

“할아버지, 저 들어갑니다아?”

나는 오지랖 넓은 사람인 양 목소리를 높이며 일부러 미닫이를 기세좋게 열어젖혔다.

문이 열리자 노친네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반대편 벽에 붙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정쩡한 자세로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니 왠지 안심이 되고 웃음이 나왔다. 난 성큼 들어서며 짐짓 야단치듯 말했다.

“할아버지 아팠어요?”

“조금… 그런데 이제 다 나았어.”

“셔터에 아프니까 쉰다고 써 붙여놓기라도 하지. 엄청 걱정했잖아요.”

“죽으면 죽는 거지 뭘 나 같은 걸 걱정을…”

말은 그렇게 해도 노친네는 기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방 안은 썰렁했다. 한 칸짜리 냉장고, 지퍼달린 비닐 옷장, 싸구려 접이식 밥상, TV가 올라가 있는 낮은 수납장. 수납장 위엔 흑백 사진이 끼워진 플라스틱 액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병원엔 가셨…”

음식이나 약을 먹은 흔적을 찾으며 방을 둘러보던 나는 말을 멈췄다. 흑백 사진들엔 하나 같이 젊은 남자가 찍혀 있었다. 충격적인 사진이었다. 나는 소리 없이 입만 벌리고 노친네를 바라보았다.

노친네는 내가 그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상황을 이미 각오한 것 같았다. 두려움 반, 체념 반.

“할아버지 설마… 이게 설마 진짜…”

“다 진짜야.”

사진엔 플래시와 비슷한 히어로 유니폼을 입고 박정희에게 훈장을 받는 젊은 청년이 찍혀 있었다. 가슴에도 플래시의 것과 비슷한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내가 준 와펜과 거의 흡사했다.

“한국에도 히어로가 있었군요?”

“코드명은 일렉트로였어. 나중에 알고보니 옷도 코드명도 다 미국 애들 걸 여기저기서 베낀 모양이야.”

“아… 진짜 비현실적인 가운데 미묘하게 현실적인 건 무엇.”

+++

노친네는 젊은 시절 정부에서 육성한 비밀 히어로였으나 전쟁 트라우마로 제대한 뒤 쥐꼬리만한 영웅 연금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극비였지만 노친네는 믿고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명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게 나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를 제대하게 만든 사건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젊은 청년이던 그는 전쟁에 투입되어 아무 생각없이 시키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 훈장도 받고 칭찬도 받았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적으로 지목된 한 청년을 거미 치우듯 죽였다. 시체를 구덩이에 버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자니 누가 다가왔다. 중년 여성이었다. 아들을 찾고 있는 듯 했다. 여자는 그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무어라고 빌기 시작했다. 아들을 풀어달라는 모양이었다. 떼어내려 했지만 여자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는 당황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성별, 나이 불문 모두 쓸어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를 거칠게 밀쳐 쓰러뜨리고 총구를 겨누자, 여자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안고 있던 보따리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살려준다 한들, 여자가 살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아들과 같이 묻히는 게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보따리를 푸느라 머리를 숙인 여자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여자의 시체를 구덩이에 버리는데 보따리가 미끄러지며 주먹밥이 굴러 나왔다. 포로로 잡힌 아들에게 갖다주라고 부탁하려던 것일까, 아니면 그에게 이것이라도 뇌물로 주려던 것일까, 그는 알 수 없었다.

여자의 시체를 버리고 담배를 피우던 곳으로 돌아오자, 아직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이다, 수풀을 헤치고 누군가가 또 나타났다. 아장아장, 이번엔 채 걸음마도 능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였다. 엄마를 찾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목이 메어 상냥하게 아이를 불렀지만, 그 작은 것은 무서워하며 울고불고 도망쳐 그를 서럽게 했다.

이 아이 역시 살아남을 확률은 없다. 남자는 도망치는 아이의 뒤에 서서, 최대한 아프지 않게, 조용하고 보드랍게 전기를 쏘아 살해했다. 그리고 구덩이에 밀어 넣으며, 저 세상에서 셋이 만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그 후로도 나는 난닝구 차림으로 나와 있는 노친네에게 인사를 건네고, 간혹 정부 욕에 동참했다. 그는 눈에 띄게 얌전해졌고, 술이 줄었으며, 손님은 적으나 전파상을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다.

노친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근 넷플릭스의 히어로 시리즈에 빠진 모양이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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